번지 없는 주막
이성애-번지 없는 주막 우리 민족은 유목민이 아닌데도, 일제강점기 때, 어쩔 수 없이 집시처럼 떠돌아 다녀야만 했다.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그 밤이 애절 구려/ 능수버들 채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박영호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이 부른 이 노래, ‘번지 없는 주막’은 당시 헐벗고 굶주리던 우리 동포들의 통한(痛恨)을 담은 것이었다. 나라가 없는데, 어찌 주거할 집이 있겠는가. 그래서 주막에도 문패와 번지수가 없었다. 1940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작사가 박영호(필명 처녀림·불사조)는 태평레코드사의 문예부 부원들과 함께 백두산에 오른다. 힘든 등산길이었다. 백두산은 역시 민족의 성산(聖山)답게 가파르고 험준한 고개와..